1. 다윗의 절망과 회복 (사무엘상 30장)
다윗은 사울왕을 피해 블레셋 아기스 밑에 망명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 전쟁이 일어나자 다윗도 블레셋 군과 함께 출전합니다.
그러나 블레셋 군대는 다윗을 불신하여 출전을 막고, 결국 다윗은 사흘 만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 사이 아말렉이 시글락을 습격하여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가족과 재산을 모두 약탈해갔습니다.
부하들은 분노하여 다윗을 돌로 치려 했고, 다윗은 절망의 끝자락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물었고, 하나님은 “따라가면 반드시 되찾을 수 있다”고 응답하십니다.
다윗은 실제로 모든 것을 되찾고, 전리품까지 얻는 대승을 거둡니다.
2. 사울의 절망과 무너짐 (사무엘상 28장)
사울은 절망 속에서 죽은 사무엘을 불러냅니다.
오늘의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없자, 그는 과거에 의존하려 했습니다.
사울에게는 내일이 없습니다.
현재의 절망은 과거의 실패 때문이고, 그는 과거로 후퇴하는 신앙을 선택합니다.
반면 다윗은 현재의 실패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 미래로 도약합니다.
이 차이는 ‘인간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3. 예수님 말씀의 본뜻 – 자기 부인과 십자가 (마태복음 16장)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마 16:24)
이 말씀은 단지 ‘헌신’이나 ‘열심’에 대한 명령이 아닙니다.
그 앞에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막으려 한 장면과 연결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위해 죽을 각오가 있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하십니다.
이유는, 죽음을 피하려는 것이 사탄의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십자가는 죽음을 넘어선 은혜의 길입니다.
4. 베드로의 회복 (요한복음 21장)
예수님은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다시 나타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묻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자기 의지가 아닌, 주님의 아심에 의탁한 고백입니다.
그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십니다.
베드로는 죽음을 이기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죽음을 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5. 바울의 회심 (사도행전 9장)
바울(사울)은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어떤 준비나 자격 없이, 오히려 적대자의 위치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바울을 쓰시겠다고 하시며,
“그는 내 이름을 위해 고난을 받을 자, 내가 택한 그릇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는 인간의 조건이나 노력과 무관하게 임한다는 복음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6. 신자의 정체성 – 창세 전에 택하심 (에베소서 1장)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이미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던 존재입니다.
실패나 절망, 자책이나 수치심도
그 하나님의 계획과 택하심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결론: 십자가는 반전의 시작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 은혜는 우리의 실패와 수치를 딛고 반전의 기회로 바꾸는 힘입니다.
- 다윗은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었습니다.
-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자기 한계를 고백하고 회복되었습니다.
- 바울은 자격 없는 자였으나,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사도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과거는 은혜의 반전이 시작될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오늘’을 ‘내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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